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제1차 세계 대전 ===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젊은 시절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는데 군 복무도 2차례 했었다. 먼저 1905년부터 1911년까지 6년간 미주리주 [[주방위군]] [[육군]]에 [[사병]]으로 자원 입대하여 [[포병]] [[상병]]으로 제대했고, 2번째로 1917년~1919년의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자 트루먼은 지독한 [[근시]] 때문에 군 복무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육군]] 신체검사에서 '''시각검사판을 통째로 외워서 입대'''하였다.[* 다른 비슷한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존 F 케네디]]는 군대에 갈 수 없는데도 '''가문빨'''로 [[미합중국 해군]]에 [[장교]]로 입대했다.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분위기와 다르게 [[진주만 공습]]에 대한 분노로 미국의 청년들이 앞다투어 군에 자원하는 분위기이긴 했다.] 이렇게 자원 입대하여 [[프랑스]] 전선에서 육군 포병 [[장교]]로[* 여담으로 트루먼의 장교 임관은 부대원들의 선출로 이뤄졌고 상부에서 이를 추인한 형식인데.. 기록을 보면 주방위군의 경우 전간기까지 시행한 듯 하다. 투표로 부대의 간부진(부사관, 장교)을 뽑는 것은 프랑스 혁명 때의 국민 방위군이 시초로, 이를 참고한 미국은 1800년대부터 대규모 전쟁(미영 전쟁, 멕시코 전쟁, 남북 전쟁, 미서 전쟁)에서 군대의 규모를 늘려야 할때 당대의 관료제 열악과 미국 특유의 민병대 문화의 영향으로, 특히 의용부대 소속으로 투표로 선출된 장교들을 1차대전까진 추인했다.] 복무하였으며 [[대위]]까지 승진하였다. 육군 복무 경력은 두 기간을 합쳐 8년에 달한다. 그리고 트루먼의 부대는 종전이 선언되는 그날까지 [[독일 제국군]]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1차대전의 마지막 교전에 참전한 부대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게 그라는 걸 생각해보면 트루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마지막 사건을 장식한 중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